작은 벌새 한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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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6-03-24 04:02 조회39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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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은 반짝이며 흘러가고
햇빛도 반짝이며 달리고
작은 벌새 한 마리도 나뭇가지에 앉아
룰루랄라( ~~~ ) 멍청히 흘러간다.
나는 보았지
강물도 햇빛도 떠나온 곳 알지 못해도
벌새가 이리로 오기 전 어디에 있었는지
그 작은 새는
나뭇가지 사이 캄캄한 구석 자리에
수평(―)과 수직의 나뭇가지( | ) 하나씩 잘라
사방 직각(┼)의 집 만들고
직각의 구석진 곳에 앉아
특이점으로 앉아, 아무도 보지 못하게 들어앉아
살다가(┼) 살다가(―) 살다가(┼)
룰루랄라 노래마저 끊긴 평형(―)의 벌판에 이르러
이곳 직각(┼)의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네
벌새가 다시 날아오른다
그녀의 반짝이는 신발이 눈부시다
햇빛처럼
강물처럼
ㅡ2026년 《예술가》 봄호
다음은
〈작은 벌새 한 마리〉 에 대한 단평입니다.
이 시는 작습니다.
그러나 작다는 사실이 곧 이 시의 세계관입니다.
1. ‘반짝임’의 이중 구조
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강물은 반짝이며 흘러가고
햇빛도 반짝이며 달리고
여기서 반짝임은 장식이 아닙니다.
움직임의 증거입니다.
흐르고, 달리는 것만이 반짝일 수 있습니다.
이때 벌새는
그 반짝이는 세계 한가운데 “앉아” 있습니다.
작은 벌새 한 마리도 나뭇가지에 앉아
룰루랄라( ~~~ ) 멍청히 흘러간다
이 “멍청히”는 자기비하가 아니라
속도의 논리에서 벗어난 존재 방식입니다.
세상이 달리는 동안
벌새는 흐르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미 시는
시간의 다른 사용자를 제시합니다.
2. “나는 보았지” — 시의 윤리적 선언
나는 보았지
이 한 줄은 작지만 결정적입니다.
이 시는 관찰이 아니라 증언으로 이동합니다.
강물도 햇빛도 떠나온 곳 알지 못해도
벌새가 이리로 오기 전 어디에 있었는지
강물과 햇빛은 기원 없이 흐르고 달리지만,
벌새는 기원이 묻혀 있는 존재입니다.
이 지점에서 시는
자연 묘사에서 존재론적 질문으로 넘어갑니다.
어디에 있었는지
이 질문은 벌새에게 향해 있지만,
사실은 우리 자신에게 되돌아옵니다.
3. 기하학이 살아 있는 세계
이 시의 가장 독보적인 성취는
기하학이 추상이 아니라 ‘살아 있는 공간’으로 작동한다는 점입니다.
수평(—)과 수직( | )의 나뭇가지
사방 직각(┼)의 집
직각의 구석진 곳에 앉아
특이점으로 앉아
여기서 벌새는 자연 속 새가 아니라
좌표계 안에 들어온 존재입니다.
직각의 집
구석
특이점
이 언어들은 과학·수학의 것이지만,
시 안에서는 은신처가 됩니다.
아무도 보지 못하게 들어앉아
이 특이점은
고립이 아니라 보호입니다.
세상의 가속에서 벗어나기 위한
가장 작은 피난처.
4. (┼)(—)의 삶 — 균형의 윤리
살다가(┼) 살다가(—) 살다가(┼)
이 반복은 리듬이자 삶의 파동입니다.
플러스와 마이너스는 평가가 아니라
존재의 호흡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균형(—)의 열평형에 이르러
이웃 직각(┼)의 집으로 다시 돌아왔나니
벌새는 도망가지 않습니다.
균형에 닿은 뒤,
다시 세계로 돌아옵니다.
이것은 탈속이 아니라
회복된 귀환입니다.
5. 마지막 반짝임 — 감각의 윤회
벌새가 다시 날아오른다
그의 반짝이는 신발이 눈부시다
이 대목에서 시는 놀라운 전이를 보여줍니다.
벌새 → 신발
자연 → 인간
날갯짓 → 걸음
반짝임은 이동합니다.
존재를 옮겨 다니며
같은 질의 빛으로 계속됩니다.
햇빛처럼
강물처럼
처음의 세계가
마지막에서 다시 닫힙니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작은 벌새 한 마리〉는
가속의 세계 한복판에서
‘균형을 잠시 맡았다가 다시 돌려주는 존재’에 대한 시다.
이 시가 주는 평안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일어날 일들이 제자리를 찾았기 때문입니다.
이 시는 이론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시인님이 평생 다뤄 온
시간, 균형, 귀환, 특이점이
가장 맑은 형태로 살아 있습니다.
ㅡchatGP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