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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의 제목 ‘흰’ 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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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6-01-10 15:24 조회1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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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의 제목 ‘흰’ 대한 이야기

프로파일 케이포엠 ・ 방금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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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92년 첫 시집 서시에서부터 ‘흰’을 다루면서 내(대지) 기도의 제목 자체를 ‘그(겨울강-생명수이며 우주 최고의 지성)를 만나 희디 흰 꽃잎을 따다 그의 식단을 차리는 것’으로 정한다. 그 이후 수십 년간 나의 시집은 정말 많은 ‘흰’을 묘사하고 형상화한다.

1. ‘흰’은 김인희 시인의 독창적 이디엄

“이번 시집에서 김인희 시인은 우주의 에너지가 견지하고 있는 독창적 이디엄이라고 할 수 있는 “흰”이라는 이미지를 퍽 열정적으로 구상해간다. 집단 기억의 기운을 띤 이미지로서의 ‘흰’은, 그녀 시편에서 부단히 우주의 최초 에너지로 환원되면서, 이때 발원하는 집단무의식의 편린들로 하여금 개별 시편으로 쏟아져 나오게끔 해준다.(…중략…)

김인희 시인은 우주와 언어와 존재의 기원으로서의 ‘흰’의 계열체들을 시집 곳곳에 배열해간다. 가령 그것은 “지금은 사라진/내 첫사랑이 살던 흰 마을, 太白의 어느 고원”(「고원마을, 太白」)이나 “세상의 모든 빛을 빨아들여/“흰”을 뿜어내는 골짜기” 혹은 “太白, 큰 흰 마을”, 「흰, 직각의 마을」 등으로 현현한다. 모두 높고 크고 빛나는 공간적 상징이다. (…중략…) 김인희 시학에서 ‘흰’이라는 원형 심상은, 존재의 기원과 궁극을 아우르는 순결함과 거룩함과 영광스러움의 지점을 모두 상징해내고 있다. 그 ‘흰’이 귀환해 오는 궤적이 말하자면 김인희 시학의 가파른 도정과 고스란히 등가가 되는 셈이다.

― 유성호 (2016년, 《시와 표현》 9월호, 5시집 『내 사랑, 흰이 돌아온다』의 평론 중 일부

2. ‘흰’은 시 전집 『흰』 전체를 관통하면서 지배하는 핵심 축

이번에 김인희가 펴내는 시 전집인 『흰』 ―김인희의 과학적 우주 서사시 『흰』 에는 제1시집에서부터 제5시집까지의 시 세계 전체가 총망라되어 있다.

이 시 전집 『흰』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축은 “흰”의 세계라고 볼 수 있다. 이 “흰”의 세계는 제1시집(1992년)의 「서시―빛과 언어와 시간, 그 사내를 찾아가는 이야기」에 나타나는 “희디 흰 꽃잎을 따다 그의 식단을 준비하고”라는 표현에서 시작해서 제2시집(1994년) 도입부의 「숲에 이르는 길」에 나타나는 “하얀 조팝나무꽃”, “하얀 꽃”, “하얗게 하얗게” 등의 표현과 「햇빛 쏟아지는 계곡의 입구」에 나타나는 “흰꽃들”, “흰 꽃으로 뒤덮인 오솔길”, “흰 꽃빛의 기억”, “흰 빛” 등의 표현을 거쳐 제5시집(2016년) 1부의 「흰」에 나타나는 “희어지고”, “희어진”, “하얀 조팝나무꽃”, “큰 흰[太白]”, “희어져 돌아오는 계절”, “맑게 희어지고”, “흰, 말(言語)”, “눈부신 하얀 갈기”, “큰 흰” 등으로 이어지면서 김인희의 시 세계 전체를 관통하면서 지배하고 있다.

‘흰’ 은 ‘언어의 차원’에서 은유와 상징을 버리고 직유로 집단언어를 거쳐 도달하는 모어(母語)의 세계를 추구하는 것.

― 오형엽 (2025년, 도서출판《k-poem》 우주서사 다섯 권 통합본『흰』의 평론 중 일부

3. 이에 대해 저자 김인희는

2010년 12월, ‘상징화된 상상계’, 고향 태백(太白)을 존재 전체의 고향으로 상정. “흰”을 핵심적 이미지로 설정하고, “흰”으로의 귀향을 형상화한 시편 5편을 완성한다. 다음 해 아르코에 응모했지만 떨어진다. 아마 작품을 보지않고 태백(太白)을 단순히 어느 탄광촌 작은 마을을 묘사한 것으로 착각한 결과라는 생각을 한다.

거기에는 「고원마을, 太白」 「흰, 직각의 마을」 등이 포함되어 있었고, ‘흰’ 혹은 ‘하얀’이라는 글자가 퍽 여러 곳에 보인다. 두 편의 시는 다음과 같지만 제5시집 『내 사랑, 흰이 돌아온다』에만도 ‘흰’이 들어간 시는 독자들이 놀랄만큼 정말 많은 시에서 다루고 있다.

고원마을, 太白

당신은 거기에 가 본적 있나요

얘기라도 들은 적 있나요

지금은 사라진

내 첫사랑이 살던 흰 마을, 太白의 어느 고원

고원에 끝없이 펼쳐진 조팝나무 흰 꽃무리 위에

정오의 태양이 눈부시게 쏟아지던 그 마을

있으라! 하니 있었던 그 마을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어

오직 그 사람과 나만이 기억하는 마을

그곳에 한 큰 폭포가 있어 그가 처음으로 세상의 어둠을 갈랐고

나를 낳았고, 아들의 어미로 만들어 주었던 그는

아침저녁 하얀 갈기를 바람처럼 날리며 고원을 내달리는 차디찬 운무

세상의 모든 남정네가 걸어놓은 구름이다가

가난한 아낙들을 위무하는 바람이다가

그네들의 발을 씻기는 물이다가

그날 그곳의 폭포에 이르러 나를 만났다네

오랜 날 그를 잊고 살았네, 잊기위해 시를 받아들였고...떠돌며 살았네

구름으로 바람으로 물로 흐르던 내 사랑이여

그립고 아픈 내 사랑이여

고원에는 꽃이 피지 않았나요?

고원의 들판 하나 가득이었던 그 하얀 꽃 말고

빨간 꽃은 피지 않았나요? 새벽이 밝아오는데

그대가 나에게 닿았던 그날

밤새 자신의 형상을 지우고 무게를 지우고 왔노라던 고백을

이제는 들을 수 없나요

구름이다가 바람이다가 차디찬 물이되어

그대가 돌아온 곳, 하얀 조팝나무꽃 끝없이 펼쳐진

6월의 고원마을, 太白

아무도 봐주지 않는

흰 운무로 그가 흐르는 곳.

흰, 직각의 마을

지금 그가 기댄 곳을 보는 이가 없네

서늘한 이마

돌아서는 발자국이 그의 것이네

세상의 모든 빛을 빨아들여

을 뿜어내는 골짜기

직각의 골짜기를 기억하는 이는 이제 없네

太白의 마을, 크고 흰

얼마를 달렸을까

지금, 세상의 가장 쓸쓸한 곳, 기댈 곳 없는 허공에 한 손을 얹고

다른 한 손은 고뇌의 흰 이마를 짚고 앉은

지나간 내 시린 사랑이여

시간이 다하여, 시간이 눈부시게 소나기처럼 떨어져 내리는 평원

지금 그가 기댄 곳엔 그가 없네

내가 그토록 애타게 찾던 그대는 간 곳이 없네

이제 돌아서야하리

그가 떠난 자리, 눈부신 평원에 쏟아지는 빛의 소나기

피해야 하네

그가 간 곳을 찾을 수 있을까

그가 존재치 않는

그가 존재하는 큰, 흰, 골짜기마을

흰이 출발한, 새로운 시간을 잉태한, 검은 마을, 太白

다시 빛의 소나기 쏟아지는

평원이 내려다보이는

흰, 직각의 마을

4. “에너지화된 지구”를 “질량화 되는 지구’로 이끌고 있는 중심축

‘흰’은 대지, 지구이며 그저 ‘흰’이라는 색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더러워진 지구(에너지화 된 지구)’를 ‘깨끗하게 하려는 '흰'(깨끗한 것, 순결한 것)에 대한 지구인들의 노력을 성화한 단어이기도 하다. 이 언어는 과학적으로는 “에너지화된 지구”를 “질량화 되는 지구’로 이끌고 있는 중심축이다.

내 사유의 바탕에는 늘 보이지 않는 성경이라는 텍스트가 펼쳐져 있다. ‘흰’ 또한 “눈을 들어 밭을 보라. 너희는 넉 달이 되어야 희어져 추수 하겠다 하지 않느냐"(요한복음 4장 35절)라는 성경 구절과 연결되어 있다.

성경의 이 어려운 해석은 1990년 기형도의 시집 『입속의 검은 잎』에 나오는 「나의 플래시 속으로 들어온 개」를 읽으며 그 해답을 찾는다. 늘 ‘존재의 비밀’ ‘우주의 비밀’에 집중하며 살고 있던 나의 눈에 기형도의 시에서 보인 선험적 체험에 대한 묘사는 놀라웠고, 반갑고, 감동적이었다. 아이슈타인은 질량과 에너지의 등가성을 정리하면서 <E=mc²>이라는 하나의 방정식을 세웠다. 나는 이 방정식을 발견하는 순간 너무나 놀랍고 감동하여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기형도의 시, 「나의 플래시 속으로 들어온 개」에서 기형도의 “흰”을 발견한 것은 아인슈타인의 이 공식을 처음 만난 순간만큼이나 충격적이었다. 그의 ‘의식’이 사상(事象)을 통해 에너지화된 우주가 다시 물질화되는 순간을 포착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그런 사유를 늘 머릿 속에 담고 사는 나의 눈에만 보이는 우주의 구조였을 것이다. 이 사건은 철학과 물리학계가 다 같이 놀라 자빠질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었지만 누군가가 발견하여 논의의 장에 올릴 때까지는 아무것도 아닌 채로 어둠 속에 있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참고로 지금까지 아무도 기형도의 시를 김인희처럼 해석한 사람이 없지만 나는 자신 있게 그의 시가 구조주의적 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 할 수 있다. 그의 시집 『입속의 검은 잎』의 첫 시편 ‘안개’에는 우주에서 가장 큰 구조 2개를 제시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묘사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시를 빨리 해석할 수가 있었던 것이고, 그의 시 속에서 ‘흰’을 발견하고 수십 년간 그 하나를 형상화 하는 일에 매달려 온 것이다. 그의 ‘흰’이 존재하는 곳은 시인이 캄캄한 밤 골목길을 돌아서다가 만난 ‘흰’이었다. 나의 사유속에서 그 ‘흰’은 바로 우주의 캄캄한 골목의 모퉁이, 블랙홀이 있는 곳과 연결되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한 블랙홀은 1996년 제3시집에 쓴 「점●, 블랙홀」이라는 내용에 있는 그런 곳이었다. 그러니까 기형도의 시에 나타난 우주적 장소가 내 시의 내용과 일치하는 곳이었다. 그때까지는 스티븐 호킹도 “빨이들이기만 하는 검은 블랙홀”만 정리되어 있던 때이다. ‘구조주의’는 우주의 비밀을 알아내는 이론이다. 잘못된 사상들의 잘못 표현된 곳도 찾아내며 그 반대의 일도 한다. 기형도의 “흰”이 참으로 오랜 새월 나의 사유를 이끌어 온 것은 내가 그의 작품을 알아보고 직관적으로 크게 이끌렸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5. 또 하나의 논의의 소지를 가진

“흰색과 빨간색이 공존한다”는 한강 작가의 글

"한강 작가의 글에서는 흰색과 빨간색이 공존합니다. 흰색은 슬픔과 죽음을 상징하는 동시에 화자와 세상 사이의 보호막입니다. 반면, 붉은색은 생명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고통과 피, 그리고 깊은 상처를 상징합니다."

붉은색과 흰색은 한강 작가가 자신의 소설에서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역사적 경험을 상징한다.

https://www.newsfreezone.com/news/articleView.html?idxno=583157

김 현 기자 kimht1007@gmail.com

나는 이 기사를 읽고 ‘참 재미있는 일이 많네!’라고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기사의 내용 또한 나의 글과 겹치기 때문이다. 1994년에 출간된 나의 제2시집 『별들은 여자를 나누어 가진다』 p.246.에 보면 다음과 같은 시가 나타난다. 흰색과 붉은색이 전 우주를 휩쓸듯 불어치는 바람이 잠잠해지면서 새 생명의 상징인 ‘기다리던 그 사내’가 나타난다. (2시집에서의 제목: 「그와 난 또다시 불이 되어 타 오르고」이며, 2025년 통합본에서는 제목이 다음과 같이 바뀐다.)

생명의 탄생

―붉은 색을 자아내는 우주의 굿판

저 죄를 씻을 다시 한 번의 오르가슴을 위하여

아들을 낳을 진통이 시작된다

지혜는 사방의 용들을 불러 모은다

그리고 명령한다

저 꽃밭을 모두 짓밟아라

세상의 딸기밭을 모두 밟아라

불꽃의 심지를 흔드는 바람을 불러라

붉은 색과 뜨거움을 열병처럼 찾아 헤매던

바람이여 돌아오라

폭풍이여 돌아오라

뜨거운 움직임을 잃었던 붉은 꽃들이여

모두 이곳으로 돌아오라

피어오르라

타오르라

붉은 빛나는 모든 실과, 모든 열매

모든 꽃을 한데 모아 흩뿌려라 그리고

대지의 흰 치마폭에 싸인 사내들에게

피처럼 불꽃처럼 뿌려주어라

사내가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도록

영영 그 치마 폭에 싸여 뼛가루를 흩을 때까지

사방의 산들을 터뜨려라

산들이여 모아 두었던 숨길을 터뜨려라

대지의 심장 속에서 영원처럼 하얗게 타오르던

그 불길을 터뜨려라

용암의 분출을 도와라

아무도 열지 않았던 내 창고를 열어

내 전 생애를 투사한 그 화목들을 모두 꺼내어

저 타오르는 불 속에 던져 넣어라

사내로 자라날 모든 씨들이 담긴 자루를

저 불 속에 쏟아 넣어라

온 세계를 태워 버려라

하얗게…하…얗…게…태워 버려라

그와 난 또다시 불이 되어 타오르고

죽었던 모든 것들이 다시 그 불꽃 속에서 일어난다

대지의 흰 치마폭에 점점이 떨어진 핏자국이여

딸기밭이여

붉은 실과, 붉은 꽃들이여

어린 사내들이여

내 아들이여

닫힌 산이여

오, 하얀 재로 흩날려 갔던

내 사내

내 사랑이여.

6. ‘흰’의 출간 시기와 관련된

한강의 '흰'은 2016년 5월 25일에 발표된 것으로 나타난다. 김인희의 5시집 『내 사랑, 흰이 돌아온다』 역시 2016년 6월 22일에 출간되었다. 한강작가의 『흰』이 출간될 무렵, 나의 책 출간일도 출판사에서 오늘 내일 하고 있던 참이었으며, 그 때 나의 시 한편 ‘흰’이 웹진 시인광장 6월호 신작시에 발표된다.

 

아래에 2013년 아르코 문학창작기금지원 신청서에 대표 작품명이 기재되어있다.  

                        2013년 연말 아르코에 제출한 신청서

한강 작가의 작품 발표일은 다음과 같다. 초판 발행일이 2016년 5월 25일이다.


나는 지금 한강 작가가 나의 독창적 이디엄, ‘흰’을 도용했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하지만 2013년 내가 아르코에 제출했던 기록과 웹진 시인 광장 신작시 코너에 발표한 날짜를 무시할 수는 없다는 생각은 지워지지 않고 있다. 어떤 경로이든 내 작품 속의 특별한 개념어 '흰'이 앞에서 보는 바와 같이 유출된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7. ‘흰’은 계속 내 시집 전체를 밀고 온 에너지의 원천

2016년 5월 하순, 시집 출간이 예상보다 미루어지고 있는 동안 내 시 사상과 제5시집을 축약한 핵심 단어, “흰”을 소설가 한강이 소설 제목으로 출간했다. 우연의 일치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그 충격으로 나는 며칠간 심하게 앓는다. 2016년《시와 표현》 9월호에서 유성호 교수는 나의 제5시집 평론을 쓰면서 이 “흰”에 대해 “김인희의 독창적 이디엄”이라고 쓰면서, 수십 년간 나의 전체 시집을 이끌어 온 이 “흰”이 내 시집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떻게 묘사 되어왔는지를 내가 하고 싶었던 말보다 더 상세하고 아름답고 논리적인 언어로 비평해 주셨다.

'흰'은 내가 1992년 첫 시집 서시에서 부터 “희디 흰 꽃잎을 따다 그의 식단을 준비하고 그의 공허가 치유되길 빌었다.” 라는 기도로 시작해 내 시 세계 전체를 요약 표현하는 상징적 메시지로 사용해 왔다. ‘흰’을 핵심 시어로 사용한 시편들을 다른 시와 묶어 밖으로 내보낸 적도 있어서 이 특별한 형용사적 명사를 다른 사람이 사용했다는 것이 못내 찜찜한 구석이 남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1992년 등단하던 해 연말에 출간한 내 첫 시집의 서시에서 시작된 ‘흰’은 계속 내 시집 전체를 밀고 온 에너지의 원천이었다. “흰”은 1994년도에 출간한 두 번째 시집과 2016년도에 출간한제5시집에 집중적으로 나타나며 제6시집(미출간)에도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두 번째 시집(1994년 출간)은 첫 시편부터 ‘우주 기억의 골짜기’를 아예 “흰”으로 상정하고 있다. 두 번째 시집의 도입부는 언어와 우주에 있어서 기억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흰’은 기형도 시인의 구조주의적 사유에서 채굴된, 철학과 과학과 신화가 집적된 언어이다. 다듬어지지 않은 채로 발견된 이 금강석을 김인희가 수십 년간 끈질기에 갈고 닦아 김인희의 ‘독창적 이디엄’으로 다시 태어나게 한 우주적 언어인 것이다.

―우주 서사시 통합본 시집 『흰』 p.713 자전 연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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